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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최장수 초콜릿 가게' 운영하는 한인 자매들 사연 "이승만 대통령 비서였던 아버지 생각하면 눈물 나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 담긴 소중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기억이다. 그러나 워싱턴 DC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가게 '초콜릿 초콜릿'을 운영하고 있는 진저 박(59)과 프란시스 박(67) 자매에게는 초콜릿이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목적이자 명제이기도 하다.   자매의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 비서였던 고 박세영 박사. 진저 씨는 인터뷰를 시작하자 아버지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박세영 씨는 도미해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은행에 입사해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국장급까지 승진했다. 진저 씨는 "제3공화국 초기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띄어 귀국을 권유 받았지만, 잠시 머물던 하와이에서 뇌출혈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라고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프란시스 씨도 아버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버지는 우리의 전부"라고 밝힌 프란시스 씨는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고, 결국 어머니와 DC에 초콜릿 가게를 해보자,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이 초콜릿 가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이들 가족에게는 초콜릿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는 북한에서 남하했는데, 외할머니가 귀한 비단천을 주셨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목숨과 바꿀 일이 아니면 이 비단천을 절대 팔지 말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전쟁 중에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비단천을 '허쉬 초콜릿'과 바꿔 먹었다고 한다. "이왕에 죽을 것,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을 먹다가 죽자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그 정도로 엄마는 초콜릿을 좋아했다”고 프란시스 씨는 회상했다. 그런 초콜릿 매니아인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초콜릿 가게를 연 해가 1984년이다. 이제는 이 가게가 “DC에 남은 가장 오래된 초콜릿 가게가 아닐까 싶어요”라고 진저 씨는 웃으며 말했다.   세계은행에 아버지가 재직하면서 자리를 잡았던 곳은 버지니아 페어팩스다. 진저씨는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이름이 ‘진저’가 됐고, 언니는 부모님이 미국에 처음 밟은 땅이 샌프란시스코여서 ‘프란시스’가 됐다고 했다. 이후 현재까지 자매는 페어팩스에서 살고 있다.   프란시스씨는 “유치원때부터 버지니아 공대를 졸업하던 1977년까지 한국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라며 “자라면서 동양아이도 보기가 힘들어 일본인 친구 2명을 본 것이 유일했어요. 그래서 항상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2학년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저를 싫어했어요. 그래도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 회장도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쓰기 시작해서 상을 타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박자매는 초콜릿 가게를 운영할 뿐 아니라 다수의 상을 휩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매는 회고록, 단편집, 요리책, 동화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출판하고 동화 부문에서는 상을 5개나 탔다. 가장 처음 쓴 동화책은 2010년에 출판된 '나의 자유 여행(My Freedom Trip)'으로 16세 여자아이가 전쟁 중에 북한에서 남하하는, 자매의 어머니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2023년 3월에 출판예정인 동화책의 제목은 '할아버지의 두루마리(Grandpa’s Scroll)로 워싱턴 DC에 사는 손자와 한국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간에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친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회고록으로 출판한 책은 26개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어 미국에서 한인2세로 자랐던 이야기, 아버지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어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26개의 단편은 오프라 매거진에서 연재를 했고, 2017년에는 '최고 미국 에세이' 상을 받기도 했다.   “하루는 초콜릿을 사러 온 고객이 상점 벽면에 걸려있는 동화책 중에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이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이 학습장애가 있었는데 저희가 쓴 동화책을 보고 학습장애를 거의 극복하다시피 했다고 말해줬어요. 앞으로 초콜릿은 저희 가게에서만 산다고 말하고 갔습니다. 너무나 기쁜 순간이었죠”라고 진저씨가 말했다. 끝어로 자매는 “처음 책을 쓸 때만 해도 한국적인 컨텐츠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에 쓴 책을 다시 출판하자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죠. 내년에 'When my sister was Cleopatra Moon'이라는 책을 재출판할 계획이에요. 앞으로 우리 책이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져줘서 참 기뻐요”라는 소감과 바람을 전했다.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초콜릿 아버지 초콜릿 가게 허쉬 초콜릿 아버지 이야기

2022-09-06

[기고] 여행자의 과거

미래는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미래를 그럴듯하게 꾸며줄 자원들은 늘 현재, 이 순간에 있기에 현재는 대체로 미래에 저당잡힌다. 또한 우린 마치 ‘역사’가 없는 사람처럼 현재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지만, 기분전환 삼아 떠난 여행은 늘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강력한 촉매가 된다.   수년 전 함께 유럽을 여행한 지인은 기차 안에서 초등학생 때 가족이 맞은 불운을 유쾌하게 펼쳐놨다. 힘 있던 가세가 기울자 부모님은 칼국숫집을 열어 아빠는 반죽을 하고, 엄마는 국수를 뽑았다. 그러던 중 어떤 일에 연루돼 엄마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엄마는 학생운동 하다 끌려온 여대생들 사이에서 연락책을 맡아 이야기는 마치 활극처럼 흘러갔다. ‘엄마가 감옥에 갔었다.’ 이런 말을 흥미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그 여행에서 배웠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자 고교 시절 내가 겪었던 학교폭력이 23년 만에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행은 기억을 끄집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서 먼 과거와 맞닥뜨린다. 현실에선 앞으로만 걸어나가기에 기억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타국에서 들을 준비가 된 귀를 만나면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는 몹쓸 과거를 꺼내놓는다. 그런 점에서 모든 여행은 ‘시간여행’이다. 몇 년 전 타이베이를 함께 거닐었던 중년 남자 둘은 여행 말미에 파국으로 치달은 결혼생활을 털어놓았다.   8월에 에든버러를 찾은 것은 거기서 파주출판도시가 변모할 방향과 미래를 참조하기 위함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두 도시를 저울질하는 와중에도 내내 과거로 돌아갔다. 누구는 술 좋아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누구는 학창 시절 선생님께 매 맞고 입원한 아픈 이야기를 했고, 그런 와중에 분위기를 지배한 감정 하나는 지나온 시간의 후회였다.   K와 M은 동년배에 지방 출신의 공통 정서를 지녔고 사회적 자아가 돋보이는 이들이다. 일이 곧 삶 자체인 것처럼 매달려온 그들은 오십대에 접어들자 본연의 자아를 조금 되찾겠다는 마음을 먹었다(자기 과거에서 스스로 배제돼왔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웃음소리, 편한 얼굴이 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기에 나는 그들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삶을 굳이 찾아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거를 털어놓는다. 귀를 연다. 톱니처럼 맞물리는 내 경험을 꺼낸다. 그러다 상대와의 간극을 확인하며 나를 이질적으로 느껴 자기혐오가 조금 깃든다. 상대의 이야기에 계속 귀 기울인다.’ 이건 이번 여행을 하면서 반복된 패턴이었다.   “자네의 여행은 항상 과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인가?” 이것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쿠빌라이 칸이 사신 마르코 폴로에게 여행 보고를 받으면서 되물었던 질문이다. 마르코는 여느 사신들처럼 이국의 풍물과 제도를 들려주기보다 각 도시에 새겨진 기억들을 가지고 돌아왔고, 바로 그것이 그 도시를 존재시킨다고 보았다. 황제는 처음엔 갖고 온 물건들이 보잘것없다며 마르코의 향수 섞인 발언을 빈정거렸지만, 마침내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불타버린 삶에서 타고 남은 찌꺼기” 같은 것, 과거 현재 미래의 뒤범벅 같은 것이 여행의 유산임을 깨닫는다.   그러니 우리의 이번 여행 목적은 미래를 구상하기였는데도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은 것은 상대의 기억 들여다보기였다. 또 다른 일행 S는 에든버러를 여러 번 온 적이 있는데, 지금은 시력을 잃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가 도시를 마치 자기 동네처럼 걸으며 거기 묻어 있는 냄새, 땟자국, 추억들을 들춰내자 ‘보이지 않는 도시’는 우리 눈앞에서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갖춰갔다. 에든버러는 축제 도시로서 자리매김한 지 75년 됐지만, 그 사회 풍경과 자연 풍경이 우리 과거와 맞물릴 때 도시는 새로운 색채를 얻는 듯했다. 특히 여성 셋이 오로지 몸으로만 대화한 공연 ‘도너츠’는 내가 과거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던 갈구·갈등·작별을 응축한 것처럼 다가왔고, 나는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잃어버린 관계 몇몇을 떠올리며 내가 가진 과거가 빈약하다는 것도 직시했다.   여행자의 눈은 사물과 만난다. 에든버러와 더블린에서 가장 많이 바라본 사물은 현관문이었다. 몇백 년씩 된 그곳의 건물들은 사적 소유물이라 해도 주인이 손대거나 부술 수 없고 변별성이나 장식에의 욕구가 들면 현관문의 재질과 색·모양만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거주자들의 욕망과 기억이 새겨져 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의 기억들을 새겨놓고 그곳을 떠나왔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기고 여행자 축제 도시 아버지 이야기 이번 여행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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